이규보(李圭報, 1168년∼1241년)는 고려의 문장가이다. 본관은 황려(黃驪縣 : 여주)이고, 초명은 인저(仁氐),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백운산인(白雲山人)이며, 시호는 문순(文順)이다.[1]
목차 |
어려서부터 시와 문장에 뛰어났다. 9세 때부터 경사(經師), 백가(百家), 노불(老佛, 도교와 불교)의 문헌을 모두 섭렵하여 한 번만 읽으면 기억하는 기발한 재사였다.
1191년(명종 20) 진사과에 급제하였으나, 이듬해 아버지가 죽자 천마산으로 들어가 호를 백운거사라 하고 글을 쓰며 지냈다. 그는 거기서 〈천마산시〉 등을 썼는데, 특히 영웅 서사시 〈동명왕편〉은 민족의 영웅 동명왕의 생애와 발자취를 노래한 서사시로 한국 문학사에 남긴 큰 업적으로 평가된다.
1199년(신종 2) 동경(경주)에 반란이 일어나자 자원 종군하여 병마녹사(兵馬綠事) 겸 수제(修製)가 되었다.
1207년(희종 3) 최충헌의 명으로 〈모정기〉(茅亭記)를 쓰고 권보직한림(權補直翰林), 1213년(강종 2) 40여 운(韻)의 시 〈공작〉(孔雀)을 쓰고 사재승, 1218년(고종 5) 좌사간 등의 벼슬을 역임하였다.
1230년(고종 17) 잠시 위도(蝟島)에 귀양 갔다가 다시 기용되어 집현전 대학사·정당문학·태자소부·참지정사를 거쳐 1237년(고종 24)에는 문하시랑평장사로 관계에서 사퇴했다.
그는 벼슬에 임명될 때마다 그 감상을 읊은 즉흥시를 쓰기로 유명하였고, 시·거문고·술을 좋아하여 삼혹호 선생(三酷好先生)이라 불리었으며, 한때는 권신의 압객(狎客)이란 말도 들었으나 기개가 있고 성격이 강직해서 조정에서는 인중룡(人中龍)이란 평이 있었다.
그의 생애 전반기에는 관운이 그리 신통치 않았으나 관계에 들어선 후부터는 벼슬이 차차 올라가, 비교적 순탄한 생애를 보냈다. 한두 차례 좌천과 귀양도 있었지만 짧은 기간이었고 글 한 수에 벼슬 하나를 얻는 글재주로써 관운이 있었던 사람이다.
|
|
||||||||||||||||||||||||
|---|---|---|---|---|---|---|---|---|---|---|---|---|---|---|---|---|---|---|---|---|---|---|---|---|
|
stock | retire | vm
Why are we here?
All text is available under the terms of the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This page is cache of Wikipedia. History